인간과 자연의 환상적 조형화면

(중략) 일상적인 삶과 관련된 체험적인 사실을 곧바로 캔버스에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의 문학적인 감수성에 의해 용해된 사실이 캔버스를 채우게 된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이미지는 이미 그 자신의 의식 속에서 사라진다. 단지 그 실제가 암시, 은유, 상징 등의 표현기법에 얹히면서 생략적이고 단순화되거나 재배치, 재구성 등의 조형적인 이미지로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된다. (중략)
…90년대에 가까워지면서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장면을 모자이크식으로 배치하는 독특한 구성적인 작업을 시작하면서 유채색으로 일신한다. 특히 이 같은 모자이크식의 구성적인 작업은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듯한 장면을 하나로 통합해가는 과정에서 실제적인 공간개념을 초월하는 독특한 환상적인 조형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건물과 인물간의 비례를 무시한다든가, 실내를 투시기법으로 노출시키는 등 새로운 발상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여러 개의 장면 또는 상황을 짜집기 식으로 배열하는 이미지 모음 형식은 내재된 얘기를 마음껏 토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사고를 지닌 그에게는 아주 적절한 표현방법이 아닐 수 없다.
묘사기법에서는 형태감각을 약화시키고 있다. 바꾸어 말해 각 물상의 윤곽선을 약화시킴으로써 이미지 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흡사 파스텔 기법과 같은 미묘한 중간색조의 그 부드러운 이미지는 실제감을 약화시키는 대신 환상적인 느낌을 지어낸다. 원색과 원색을 혼합함으로써 생기는 은은한 중간색조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비현실적인 공간 처리와 색채이미지를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환상적인 이미지를 특징으로 하는 일련의 심상 풍경은 형식화되기에 이른다. 서정적인 분위기가 짙게 풍기는 풍경들은 간결한 형태로 압축되는 시(時)의 이미지에 닿고자 한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도회지 풍경일지라도 삭막함을 벗고 부드럽고 따스하며 환상적인 이미지로 바뀐다. 그 자신의 꿈과 욕망이 그처럼 아름다운 환상을 만들어냈다….

(평론가 신 항 섭, 1997.3 화집 출간평)



일상적 시각과 공상적 표현의 복합

...(작가의) 화면에 일관하게 담겨져 있는 매우 농밀한 서정적 시각의 풍경 주제와 환상적이랄 수 있는 그 속의 삶과 인간 모습의 설화성 등은 매우 주시할만한 특질의 형태이다. 그간의 金星姬의 작품 주제와 소재는 일관되게 현실적 생활주변의 체험적 시각과 거기에 문학적 혹은 시적(詩的) 상상력을 결부시킨 자유로운 화면구성으로 형상된 것이었다. (중략)
…그러한 성향으로 여성적인 감미로운 공상력과 현실감정에 입각한 자유로운 화면구성의 묘미 있는 형상들이 작가의 남다른 역량과 감성을 엿보게 한다. (중략)
예민한 감수성의 화가나 시인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느낌으로서의 미(美)의 대상이며, 표현할만한 성질의 대상들이다. 그러나 그를 자신의 표현세계로 수용하고 뚜렷한 내면성의 작품화를 기하는 데는 특출한 예술적 감수성과 조형적 능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모든 화가는 그 목표를 열심히 추구하며 도전해가는 것으로 그 과정의 충족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화면들에 그대로 반영돼 있듯이 작가 金星姬는 대단히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과 문학적 상상력에 스스로 몰입하는 기쁨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로써 일단은 방법상의 특질성을 보이고 있다. 그 화면들에는 작가의 일상적 시각과 주변 이야기에 정겹고 공상적인 상념이 묘미있게 겹쳐있다….

(평론가 李 龜 烈, 1993.11.1~10 조선화랑 개인전)



金 星 姬의 첫 個人展에

(중략) 더욱 주목할만한 점은 건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다양성이고 몇 작품에서는 초현실적인 다시점(多視點)을 시도하여 건물의 내부공간과 그 속에 담겨지고 있는 삶의 양태를 동시에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김성희의 이번 작품에서 건물의 시리즈가 주류가 되면서도 간간히 꽃과 나무와 인물들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시점(視點)의 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된다. 인물이 단순한 율동의 매개물이거나 동물의 한 유형처럼 포착되고 있는 것도 그의 여유 있는 성찰의 한 반영이기도 하다. 그 여유는 물론 도시의 삶 속에 놓인 그의 화실이 연기자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관객의 자리가 됨으로써 얻어지는 여유임은 물론이다….

(평론가 朴 容 淑, 1987.4.8~4.14 현대미술관 개인전)